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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국가 불교적 성질
왕이 국민들로 하여금 불법을 숭신하여 복을 구하라고 하교하였다는 것에서 우리는 또 당시의 백제불교가 국가적인 경향이 짙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이는 물론 처음 불교를 받아들일 때부터 국왕이 그토록 파격적이라고 할 만큼 적극적이었고 곧 이어서 사원을 창건하고 도승하는 등 급격한 수용자세를 보였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처럼 국왕이 직접 받아들이고 왕실 중심으로 수용전개 시켜 나갔기 때문에 국가 불교적 추세는 당연한 것이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26대 성왕은 그 4년에 고승 겸익이 인도로부터 귀국하였을 때 교외에서 환영하고 흥륜사에 안주케 하였으며 국내의 고승 28인을 소집하여 겸익법사와 함께 그가 인도에서 가져온 불전을 번역하게 하였다. 그들이 번역을 마치고 또 36권의 율소까지 지어서 바치자 왕은 새로 번역된 서를 지어서 태요전에 봉장하였다.
그리고 성왕은 또 그 19년에 사신을 양에 보내어 열반경 등의 의소와 공장 화사 등을 청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도 국왕의 불교에 대한 적극성과 또 국가 불교적인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그처럼 백제에서의 불교가 국가적이었기 때문에 29대 법왕은 그 1년 12월에 살생을 금하는 영을 내려 민가에서 기르는 매를 놓아주고 어렵도구를 불태우게 하였다. 법왕의 이와 같은 살생금령은 형식적인 계율의 권장이 아니라 불교의 생활화를 국가적으로 실천하게 하려 하였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불살생은 불교계율의 가장 기본적인 것 일 뿐만 아니라 불교신앙의 제일 중요한 실천요목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법왕은 이와 같은 불살생을 백성들에게 실천하게 하여 불교신앙이 생활화되도록 하였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것에서 더욱 당시 백제의 불교가 국가 불교적인 성격
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본 몇 가지 자료가 백제불교의 국가적면을 보여준다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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