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2. 개화파의 형성과 활동
(1) 개화파의 형성
개화사상을 교육받은 청년들은 정치세력으로서의 개화파를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그 중심에는 김옥균 김옥균〔자(자)는 백온(백온), 호는 고우(고우), 또는 고균(고균)〕은 1851년 1월 23일 충청남도 공주에서 김병태(김병태)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김옥균의 부친 김병태는 벼슬길에 나서지 못하였다. 김옥균의 나이 6세 되던 해 가을에 종숙(종숙)인 김병기(김병기)의 양자가 되어 서울로 올라갔다. 옥균은 글공부에 총명했다. 그가 22세 되던 1872년 2월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였으며, 그 후 홍문과 교리, 사간원 정언, 승정원 우부승지 등을 역임하여 30세 전에 쟁쟁한 나라의 청년 정치가로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김석형, 「김옥균의 생애와 활동」, 『김옥균』, 역사비평사, 1990
이 있었다. 이러한 개화파의 형성 시기는 남북한의 견해가 일치한다. 궁녀 모씨에 관한 갑신일록의 기록 김옥균, 「갑신일록」, 1884년 12월 1일, 『김옥균전집』, 아세아문화사판, p. 73.
에 의거하여 1874년 이전에는 이미 개화파가 형성되어 활동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개화파의 일원을 모으기 위해 김옥균은 많은 …
참고문헌
『조선전사 13』, 과학ㆍ백과사전출판사, 1980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38』, 탐구당문화사, 1999,
과학원 역사연구소,『조성통사(하)』, 오월, 1989
김옥균, 「갑신일록」, 1884년 12월 1일, 『김옥균전집』, 아세아문화사판,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