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식읍의 성격과 기원추적
식읍에 대한 많은 기록과 그 내용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고려·조선시대의 식읍의 성격을 살펴보고 그 다음 통일신라 그리고 삼국시대와 같은 앞선 시대에 비슷한 유형의 토지제도와 부세제도는 무엇이었는지 역추적해보도록 한다.
우선 고려시대의 식읍은 왕족, 척신 그리고 대공훈자로서 고위관료들 일부가 지급받았다. 중국의 주·한의 고사가 거론되면서 고제도는 모두 의로서 인식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고려의 식읍은 토모 즉 봉토를 나누어 호식을 사여한다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국왕은 이를 통해 수봉자에게 왕실번병으로서 금석지맹의 충성을 약속받았다. 주개오등지봉증회무업한치칠왕지보영요비도 ꡔ고려사ꡕ 90, 열전 3, 종실 1, 상안공 수, 하책, p44 사실 식읍은 중국의 오랜 제도였다. 전국시대 이후 대체로 역대 왕조에서 계속 시행하여왔다. 주대의 봉건제도 아래에서 왕족과 공신에게 분봉하던 봉토의 기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서 채지·채읍이라고 불렀다. 우리의 식읍도 중국의 정신에 그 기원을 두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식읍의 구성단위는 호였다. 토모를 나눈다고 하였지만, 토지의 급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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