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발표내용을 들으면서 나는 개인적으로 동의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장자를 조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Thoreau의를 잘 모르더라도 언급된 인용문들을 통해서라도 두 사람 가치관이 상당히 괴리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은 먼저 Thoreau는 18171862에 활동했던 사람이다. 잘 알고 있듯이 산업 혁명이후 서구에서는 산업사회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시도가 많았다. Thoreau역시 철학자로서 시대를 고민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장자의 전국시대와 Thoreau의 근대시대를 동시대로 일반화시킨 오류를 범하고있다고 생각된다. 일반화는 동양적 세계관에서의 장자의 사상을 서구의 세계관으로서의 해석으로 바뀌어 언어의미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슐츠 교수가 이용한 자연, 초월, 이성, 차별이란 단어는 장자적 용어와 같을 수가 없다. 특히 물질 만능주의의 문제를 버림의 철학으로써 설명하려는 Thoreau의 주장이 개인의 철학적 견해임을 설명해야 했다. 이는 자칫하면 Thoreau의 철학은 장자의 철학과 동일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Thoreau가 철저한 자연주의자이지만 고대 헬레니즘(hellenism)문화 시대의 스토아학파에 냄새를 남기고 있다. 운명론을 받아들이며 마음에 평정상태를 얻으려 했던 스토아적 생각이 발표문의 짧은 내용에서도 Thoreau철학에 묻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또 다른 하나는 과연 장자적 세계관이나 Thoreau의 자연주의 세계관이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인간다운 삶의 지표를 마련해 줄 수 있느냐가 문제이다. 사실 나에게 있어 인간적 삶이라는 바탕에 무엇이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는 고정된 관념이 자리잡고 있다. 돈·명예·좋은 사람 등은 내 인간적 삶에 귀중한 어떤 것(?)이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에도 분명 이것들은 변하지 않는 삶의 가치에 있어 물질적, 정신적 조건들이다. 물론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 자유·평등의 공통된 전제는 기본적으로 구현되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