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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와 감상
민담에서 소재를 시화한 작품이다. 즉, 시집간 누나가 시아버지의 후실인 의붓어미의 시샘을 견디지 못해 원통하게 죽었고, 그리하여 그 누나의 원혼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접동새가 되어 밤마다 고향집 동생들을 찾아와 슬피 운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소월의 시 세계가 ‘한(恨)’이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한국인의 정서에 있어 ‘한’만큼 깊게 자리한 것을 찾기는 어렵다. 소월이 그리려고 한 감정의 음영(陰影) 중에서 가장 강렬한 것이 한이었음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다. 한이 개인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한국인 모두에 공유되었다고 볼 때, 그것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설화에 있어서이다. 설화는 역사를 흘러 오면서 집단적 정서가 반영된다. 보편적 공감을 얻지 못하는 화소(話素)는 사라지게 되고, 모두가 공유하는 세계만 고스란히 전하게 된다. 원형(archetype)이 반복되면서 드러나는 것은 그만큼 정서적 힘을 발휘한다는 의미이다.
이 시는 바로 설화의 세계에서 보이는 원형적 한과 화자 개인의 정서가 교묘히 결합하면서, 보편적 한의 정서를 개인적 한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1연. 접동새 울음소리를 제시하며 시상의 전개를 준비한다. ‘아우래비’는 ‘아홉+오라비’를 활음조로 줄인 말이다.
2연. 접동새는 누이의 원혼(冤魂)이었다. 누이가 살던 곳을 잊지 못하여 접동새로 화해서 계속 진두강 언저리를 맴돈다고 화자는 바라본다.
3연. 2연의 이유가 제시된다. 민담(民譚)을 시화(詩化)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민담은 집단적 성격을 지니고, 민담 속에 서린 정한(情恨)은 우리 민족의 집단화한 정서이다. 이런 면에서도 소월은 민요시인으로서의 성격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누이가 죽은 이유를 설화적 진술을 통해 드러낸 것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