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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은 너무도 뛰어나서 영악한 감독이라는 생각까지 들게한다. `복수`라는 주제를가지고 <친절한 금자씨>를 만들었냈다는 것이 그의 뛰어난 영화기술을 보여주는 것같다.
영화 제목은 거대한 속임수로 작용해 관객의 시선을 `이금자, 누구냐 넌?`에 초점을 맞추게 한다. 감독이 주된 영화의 관심사를 제목에서부터 이동하게 만든 이유는 복수로 치닫는 직접적 과정에서 놓치기 쉬운 `인간성`과 피로 얼룩진 그 길에 진정 `속죄`(구원)는 없는가? 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마녀 이금자 또는 친절한 금자씨로 불리는 그녀에 관해 감방동기 개개인의 기억은 하나의 퍼즐조각처럼 금자란 인물을 설명해주고 있다.
짧은 리듬감으로 뚝뚝 끊어지는 그들의 기억은 금자 내면의 죄책감과 증오의 응어리를 파편적이나마 엿볼 수 있게 하는 영화적 장치다. 박찬욱 감독의 자의식이 투영된 `금자`는 카메라 페티시의 대상이다. 인물을 따라 수평으로 이동하는 카메라의 움직임에서 기억의 퍼즐들은 금자씨를 향해 집중되어 있지만 어떠한 것도 그녀의 내면을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금자씨에 관한 궁금증은 커질 뿐이다. 추상화 되어가는 인물의 몽타주는 본인의 의지에 관계없이 감독, 카메라 그리고 주위 인물들의 기억으로 뭉뚱그려 진다.
관객이 단편적인 정보를 취합해 금자씨에 관한 이미지를 정립해 나갈 때, 금자씨의 복수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페티시인 금자에게 우리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을 때 감독의 맥거핀(친절한 금자)은 노골적으로 존재를 드러내며 작동한다. 고의적이지는 않지만 의도된 속임수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의도된 속임수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면서 영화를 보는 관객도 있을 것같다. 박찬욱 감독은 여전히 그만의 영화적 색깔들을 영화전반에 넣어가려 했던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