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여성을 요구하고 그것은 새로운 여성상을 통해 구현된다.
그런 의미에서 20세기가 신사임당의 시대였다면 여성의 세기라는 21세기는 허난설헌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지금부터 4백여년전 조선왕조 선조 시대에 살았던 불꽃같은 여인 허난설헌. 그녀는 유교의 비인간적이고 엄혹한 여성윤리에 묶여 있던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부녀로서 그 철옹성같았던 남성중심체제,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에 정면으로 저항했던 선구적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우리에게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지금까지 진정한 여성의 역사는 단절된 채 반복되면서 계속 지워지고 은폐돼 왔기 때문이다.
세상은 남자들의 것이었고 그렇게 일그러진 세상은 독자적인 여성의 힘, 그 존재를 용납하지 않았다. 하물며 그것이 남성의 지배에 반기를 드는 것이었을 때 그에 대한 처벌과 응징은 가혹하기만 했다. 남성들과 그들이 지배하는 세상에 저항했던 여성들은 고독하고 비참하며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고 사후에도 도덕적 오물을 뒤집어 쓴 채 매장당해야만 했다.
5년전 허난설헌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런 여성의 역사를 다른 나라, 다른 시대가 아닌 바로 우리 땅 조선의 역사에서 확인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일거수일투족이 유교의 비인간적이고 엄혹한 여성윤리에 묶여 있던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부녀로서 그 철옹성같았던 남성중심체제,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에 정면으로 저항했던 선배 여성을 마침내 만나고야 말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벅차올라 잠을 이루지 못할 지경이었다. 오로지 진흙 뿐인줄 알았던 곳에서 뜻밖에도, 마치 기적처럼 감춰져 있던 빛나는 옥구슬 하나를 발견한 감격이라고나 할까.
허난설헌은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