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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절 일제의 침입과 근대화운동의 실패
쇄국정책 아래 있었던 일본은 1854년 미국의 무력 위협에 의해 개항하였다. 개항 이래 일본정국은 개항과 정권장악을 둘러싸고 지방세력들 사시에 전쟁까지 치루는 등 혼란이 야기되었다. 이 전쟁 등 혼란에서 왕정복고를 내세운 존왕파가 승리하였고, 1868년 존왕파는 명치유신을 단행하고 완전 서양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였다. 그리고 일본은 황제의 등장을 알리고 수교를 요구하는 문서를 조선에 보내왔다.
이때 조선은 대원군의 쇄국정책이 견고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따라서, 조선은 격식에 어긋남을 이유로 외교문서의 접수조차 거부하였다. 민씨정권이 등장하면서 조선은 개화파가 진출하고 개국으로 입장이 선회되는 면이 나타났으나, 그것은 척사세력의 반대로 쉽게 이루어지지 않은 채, 일본 외교문서의 접수는 계속 지연되었다.
이후 일본은 서양과 체결한 불평등조약에 의한 손해를 보충해야 하였고 또 자본주의의 도입에 따라 새로운 상품 시장과 원료 공급을 필요로 하였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1873년 조선의 정벌을 주장하는 정한론이 대두되었고, 다음 해에 일본은 대만을 점령하였다. 일본은 조선의 외교문서 접수의 거절을 침입의 구실로 이용하였다. 1875년 일본은 운양호사건을 일으켜 무력시위를 감행하면서 개국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일본의 요구와 조선내부의 개화파의 주장이 맞물려, 1876년 2월 일본과 조선은 ‘조일수호조규’를 맺었으며, 이어 7월에 그 내용을 구체화한 ‘조일수호조규부록’과 잠정적 통상협정인 ‘조일무역규칙’을 조인하였다.
여기에서 근대적 조약체결의 경험이 없었던 조선측은 문호개방 조건으로 아편 수입 금지·무기 수입 금지·천주교 전래 금지 등을 관철시키는 데만 노력하였다. 따라서 일본은 그것을 허용하는 대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