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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치가로서 입신
최초의 헌법제정
일본정부는 1868년 메이지정부를 수립하고 국회 개설을 위해 헌법 제정을 서두르는 데, 이 중차대한 일을 이토 히로부미가 담당한다. 이를 위해 1882년부터 1883년까지 이토는 유럽을 순방하게 된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을 시찰하며 그는 당시 독일 헌법과 제조에 영향을 받는다. 1885년 태정관제를 폐지하고 새롭게 내각제를 도입하자 이토 히로부미는 내각의 총책임자인 총리대신이 된다.
이토 히로부미가 기초한 소위 제국헌법에 의해 구성된, 2차대전 이전의 일본의 통치기구는 전체주의적 성격이 강했다. 일왕의 통치를 보좌하는 내각 외에 때로는 권력이 더욱 강한 추밀원, 귀족원, 내대신부 등 특권 관부가 행정부를 견제했으며, 또한 메이지유신 이래 원훈이라고 불리는 권력자가 군림했다. 극히 권력의 소재가 다원적이고 권력의 행사가 복잡했던 것이다.
그 위에 군사권에 대해서 육군은 참모본부, 해군은 군령부가 천황에 직속되어 있었으며 의회는 정부에 귀속되어 있지 않았다. 정부 관료를 포함한 모든 통치기구의 책임은 천황에게 있었다.
1887년 이토 히로부미 주도하에 헌법 초안이 마련되고 1888년에는 완성이 되었다. 이토는 수상 자리를 구로타에게 주고 자신은 추밀원에 들어가 최초의 추밀원장이 된다. 헌법 초안은 추밀원의 심의를 거쳐 1889년 11월에 발포된다.
이토 히로부미와 왕실의 관계
이토 히로부미를 포함한 많은 번벌정치가들은 에도 막부정권 말에 존왕도막운동에 종사했다. 이때 왕의 존재는 그들에게 막부권력을 찬탈하는 데 필요한 심볼이었다. 메이지유신 이후에는 왕정복고가 이루어지고, 천황은 그들에 의해 새로운 일본에 군림하는 지배자가 됨으로써 천황제라는 거대한 국가체제가 정비되었다.
왕은 그들에게 지성지고의 존재였다. 이토 히로부미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