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④군사 : 1920년에 상하이에 육군무관학교를 세웠으나 큰 활약은 없었고, 중국에 있는 각 군관학교에 파견을 장려하면서 만주에 있는 독립군을 후원하였다.
⑤사료편찬부 설치 : 외국에 파견되는 특사에게 한국독립의 이론적 근거를 설명하고, 일본의 침략사실과 한국역사의 우수성을 설명하기 위해 1921년 7월에 설치하여 9월 말에 전 4권의 책을 완성하였다.
⑥언론기관 : 기관지 <독립신문>을 이광수(李光洙)가 주필이 되어 발간하고, <신대한보(新大韓報)>·<신한청년보(新韓靑年報)>를 간행하였다.
⑦외교활동 : 1919년 4월 18일 김규식(金奎植)을 전권대사로 하여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하고, 각지에 외교관을 파견하여 한국독립운동의 열의를 만국에 호소하였다. 이어 7월에는 스위스에서 열리는 만국사회당대회(萬國社會黨大會)에 조소앙(趙素昻)을 파견하였고, 주미 외교위원장 서재필(徐載弼)도 미국에서 독립을 위해 활동하였으며, 1920년 10월에는 신규식(申圭植)을 광둥(廣東)의 쑨원(孫文)이 세운 호법정부(護法政府)에 파견하기도 하였다. 미국에서는 이승만 중심의 구미위원부를 두어 외교활동을 활발하게 하였다.
⑧대일·대독 선전포고 : 광복군을 조직하고 1941년에 일본과 독일에 각각 선전포고를 하고 연합군에 편입시켜 특히 미얀마·사이판·필리핀 등지에서 용맹을 떨쳤다.
◈ 임시정부 수립 80주년의 역사적 의미
동아 일보 99. 04. 13.
1919년 3·1 운동이 절정기에 이르렀을 때 중국 상하이에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3·1 운동을 통해 우리 나라가 독립국임을 전 세계에 선포했으니 다음으로 그 독립국을 운영해 나갈 정부를 수립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었다. 대한 민국 임시 정부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대한 제국이 아닌 대한 민국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