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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전 시기 여성은 공식적으로 작가가 될 수 없었다. 우리가 이름을 기억하는 허난설헌이라든지 황진이 같은 여성 시인은 아주 예외적으로 문학을 공부하고 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며, 더 우연하게 후대에 그들의 작품이 전해질 수 있었다. 허난설헌은 재주 있는 동생 허균이 있었고, 황진이는 기생으로서 당대의 문장가들과 교유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근대 이후에도 여성이 작가가 되려면 최소한 중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경제적 여유와 쓴 글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을 얻을 수 있는 관계망이 필요했다. 강경애는 가난한 농민의 딸로 태어나 겨우겨우 공부를 했고, 작가가 되어서는 간도 용정에 살면서 서울 중심의 중앙문단과는 거리를 두고 지냈다는 점에서 동시대 여성작가와는 성장 배경이 달랐다. 불우한 가정환경과 극한의 궁핍이란 작가가 다양한 경험을 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남성 작가들에게서 궁핍의 경험담을 듣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는 그런 궁핍을 디디고 자기를 세울 수 있는 기회란 극히 드물었다. 궁핍한 환경에 놓인 대부분의 여성들은 아예 교육도 받지 못했으니, 자기 정체성을 세우는 성찰의 시간이나, 글을 쓸만한 시간과 공간은 특별히 혜택 받은 극소수 여성의 것이었다. 그리하여 문학작품이나 그외 공식적인 기록물로 여성의 흔적을 거의 남길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강경애는 드물게도 하층 여성의 목소리를 공식 기록으로 끌어올린 식민지 시대 하층 여성의 대변자였다. 그뿐만 아니라 첨예한 충돌의 현장인 간도에서 항일 무장투쟁에 참가한 사람들의 면모를 목격하고, 그들의 고통과 정당성을 기록으로 증언하고, 그것을 일제의 직접 지배를 받는 식민지 조선에 전할 수 있었던 작가로서 시대정신의 최대치를 구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