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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기지에 대하여 말씀드립니다.
오키나와는 일본의 최남단에 위치하여 70여개 섬으로 이루어진 현이며 면적은 일본 영토의 0.6%에 불과합니다. 도쿄와 마닐라에서 각각 약 2시간 반의 비행시간을 소요하는 위치에 있으며 오키나와를 축으로 원을 그리면 2000km 이내에 동아시아 주요도시가 들어갑니다. 이런 지리적인 위치가 이 작은 섬을 지정학적으로 「태평양의 요석」이라 불리게 하였습니다. 참고로 오키나와에서 한국까지 약 2시간 20분이었습니다.
제2차 대전 당시 일본에서 유일하게 지상전의 무대가 된 오키나와는 1945년 3월에 미군이 상륙하한 후 3개월 동안 인구의 4분의 1을 잃음과 동시에 모든 사회구조가 파괴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한국전쟁이 시작한 1951년 6월 25일, 오키나와는 이미 광범위한 땅이 군사기지로 접수되어 같은 해 9월 8일에 일본과 연합국 사이에 체결된 평화조약, 또한 일미 양국 간에 체결된 안전보장조약 제 3조로 인해 오키나와는 일본에서 완전히 분리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신탁통치 하로 들어가 한국전쟁 파병기지가 되었습니다.
한국전쟁에 이어 월남전쟁에서도 오키나와는 늘 5만 규모의 군대가 오가는 미군기지로서 연습, 지령, 무기탄약저장기지, 그리고 귀환병의 위안기지가 되었습니다. 미군의 고등변무관을 최고통치자로 하는 군사우선정책 하에서 재판권도 없이 사람들의 기본적 인권은 박탈당했습니다. 이는 시정권 반환까지인 27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1972연 5월 15일 시정권반환, 조국복귀로 인해 일본국헌법과 여러 제도가 적용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독가스철거나 일부 토지 반환 등도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오키나와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군사기지의 섬」으로부터의 해방이었는데 복귀후 30연, 전후 57년이 지난 현재도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의 75%가 오키나와에 존재하는, 실로 반세기 이상에 걸쳐「군사기지의 섬」인 환경은 계속되왔습니다.
Ⅱ 기지·군대가 시민생활에 미치는 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