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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문민정부시절 세계화의 물결 속에 우리의 것보다는 외국의 문화 흡수에 더욱더 매진하였던 시기가 있었다. 모든 것이 외국의 기준에 적합하고 우리 고유의 문화마저 외국의 것에 맞추어야 직성이 풀리는 시기가 있었다. 그리도 지금도 어린 학생들에게 한글보다 먼저 영어나 외국어를 가르치는 모습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에서 조선말 위정척사운동을 벌인 우리 선열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Ⅱ. 본 론
1. 위정척사 사상
18세기 말부터 19세기에 걸쳐 조선사회에 만연하였던 위정척사론과 운동의 이념은 그 뿌리가 매우 깊다. 송대에 형성된 성리학을 그 지배이념으로 삼아 건국된 조선왕조는 그 뒤 정계와 학계가 성리학에 의해 유지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조선초기에는 정도전 등이 불교를 배척하면서 벽불론을 주창하였고, 17세기 청의 침략을 받게 되자 주희의 명분론에 의거하여 청을 배척하는 북벌론으로 나타났다. 그 뒤 18세기 말에는 정학을 높이고 이단을 물리친다는 전통적인 유교논리에 근거하여 천주교를 배척하게 된다. 특히 1791년 진산사건을 계기로 척사론은 정치적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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