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 게르만계 켈트족의 대침입이다. 기원전 390년 용맹스런 켈트족은 로마군을 연파하며 마침내는 수도 로마로 진입, 일곱 달이나 로마를 점령하고 철저하게 도시를 파괴시켰다. 건국이래 수도가 짓밟힌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이 수치로 잠에서 깨어난 로마인들은 귀족파와 평민파로 나뉜 국론 분열이 나라의 힘을 약화시켰음을 깨닫고 뭔가 획기적인 조치가 필요함을 인식한다. 마침내 기원전 367년, 로마가 세계 제국으로 발돋움하는 발판이라고 할 수 있는 리키니우스 법을 통과시키게 된다. 이 법은 모든 관직을 평민, 귀족이라는 신분의 차이 없이 전면 개방하는 혁신적인 인재 등용 시스템이었다. 국가 요직의 전면 개방은 완전히 자유 경쟁 체제 속에서 오직 실력으로만이 리더십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시스템을 탄생시켰음을 의미한다. 이런 개방성을 바탕으로 로마인은 당시 고대 사회에서는 전무후무한 공화적 정치 체제를 확립했다. 집정관을 통해 왕정의 독재성을 보완했고, 신분의 차이 없이 경험과 능력 위주로 선발된 인재들이 원로원을 구성한다. 또한 민회라는 국가 최고 결정 기구를 두었다. 기원 4세기 중엽에 벌써 귀족 계급의 아성에서 벗어난 것이다. 소수의 사람이 다수를 다스리는 것은 다른 나라들과 같지만, 귀족 정치와는 달리 그 소수의 혈통을 문제삼지 않고 오직 실력과 경륜을 따지는 과두정치 체제로 돌입한 것이다. 이 시스템의 특징은 신분을 초월한 공평한 자유 경쟁의 기회, 그리고 서로의 독주와 단점을 견제하고 보완해 줄 수 있는 힘의 분배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그 당시로는 거의 파격적인 인재 양성 시스템을 도입 한 로마는 다른 나라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양질의 인재들을 많이 배출해 낼 수 있었고, 이렇게 해서 다져진 로마의 두터운 리더층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엄청난 플러스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이렇게 그 당시로는 거의 파격적인 인재 양성 시스템을 도입 한 로마는 다른 나라들과는 비교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