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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1:40분 -
파사석탑을 구경하다 잠시 바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는 중에 어떤 아저씨 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부산 사시는 분인데 바람쐬러 잠시 들렀다고 하셨다. 표준어를 쓰는 나보고 어디 사냐고 밥집 아줌마와 마찬가지로 묻기에 서울살고 숙제하러 왔다니, 예까지 숙제하러 왔냐며 밥이나 한끼 사주시겠다는걸 정중히 거절하고는 다시 차로 이동하였다. 차로 이동 후 대성동으로 이동을 했다. 대성동 고분군 유적은 부여족 남하설에 관한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곳이라 하였다. 김해 가락국의 지배층 또는 왕릉으로 추측되기도 하는 유적이며 많은 가야 유물들이 쏟아져 나온 곳이기도 한 중요한 곳 이였다. 또한 대성동 고분은 능선부의 왕묘와 이에 상응하는 지배자의 무덤이 경사면에는 보다 신분이 낮은 자들의 무덤이 발견되었으며 토기와 철기, 장신구 등 많은 유물이 발굴되어 가야의 성립과 전개, 성격, 정치·사회구조를 해명하는데 으뜸가는 유적이라 할 수 있다 하였다. 대성동 고분군 유적은 지금 현재 유적지 자체에 남아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얼마 후면 대성동 관련 유물 전시관이 개관한다고 하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대성동 고분군 유적에서는 고분군 지표에 산재해 있는 토기 파편들을 직접 주우며 신기해하고 나름대로 감흥을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 이였던 것 같다. 별 의미가 없는 그냥 토기 파편이라 할지라도 나에게는 마냥 소중하게만 보여 기념으로 집에 가져가야겠다고 몇 개를 찾아 주웠다. 결국은 주운걸 깜박 놓고 왔지만..
봉황대 유적은 조개무지, 주거지, 환호, 쓰레기장 등의 유구가 확인된 가야 최대의 생활 유적이라 한다. 공통적인 가야문화의 특징은 철과 관련된 유물, 유적 발굴인데 야철이 행해졌다 함은 철을 직접 가공, 생산했다는 이야기므로 가야 철기 문화의 우수성을 알 수가 있는 유적지였다.
참고문헌
「가야는 신비의 왕국이었나?」 청아출판사 김경복,이희로지음
「가야 각국사의 재구성」 혜안출판사 부산대학교한민족연구소
「가야사 연구」 백산자료원 조희승
「한국 고고학 사전」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 고대사 속의 가야」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