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Ⅱ. 군현제의 실시와 수령중심 관권체제의 한계
1. 선초의 군현제 정비
고려의 군현제는 이름이 군현제라고는 하나 실상은 대호족들의 세력판도를 외형적으로 짜맞춘데 불과한 호족연립체제였다. 그리하여 군현 간의 영역이 현저히 달랐을 뿐 더러 한 군현이 심지어 10개가 넘는 속군, 속현, 향, 소, 부곡을 거느리며 그 속군, 속현이 다시 독자의 휘하영역을 거느리는 누층적 지배구조를 취하여 군현제의 실상과 거리가 먼 것이었다. 이와 같은 간접지배체제에서는 중앙왕권의 명령은 호족들의 누층적 지배구조를 통해 몇 단계 걸러져서 비로소 민에게 도달하고 조세, 부역, 공납 등의 행정수요도 민으로부터 몇 단계 거쳐져서 수령이 파견된 주현에 수합되어 국가에 바쳐졌다.
중앙왕권으로서는 이들 지방세력의 타파가 왕권강화와 표리의 관계에 있으므로 초기부터
이 방향으로 줄기찬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군현제는 누차의 개혁에도 불구하고 내부의 다원.할거적 본질에는 변함이 없이 외면적 영속관계의 재조정에 그치고 있었다. 정작의 군현제 개편은 전래의 토착세력이 고려왕권이 아닌 외침 즉, 몽고의 장기간 지배, 왜구.홍건적의 난 등으로 스스로 붕괴된 여말에 와서 그 가능성이 마련되었다. 즉, 이때 촌락은 황폐화되고 많은 향리들이 도산하거나 유망하였던 것이다.
새로이 조성된 상황을 유리한 여건으로 삼아 조선왕조는 이들이 사실상 집권한 여말부터 실질적인 군현제 개편을 서두르게 되었다. 즉,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지방세력의 강
약에 따라 군현의 대소가 결정되는 종래의 군현편제방식에서 탈피하여 토지의 광협, 인민의 다소, 지리적 원근 등 국가행정의 효율성이라는 논리에 따라 군현을 개편하였다. 그리함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