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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안에서의 교육
교육(educare)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우리는 이끌어냄이 이루어진 지점의 차원(학습자가 이미 갖고 있는 재능과 능력을 알아내는 것)과 이끌어냄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의 과정(학습자에 의해 현재 경험되어 지는 것), 그리고 이끌어냄이 지향하는 미래(무엇이 되게 하는 것)라는 세 가지 차원을 생각할 수 있다. 앞의 두 차원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쟁에 근원을 두고 있다. 이 두 명제는 모두 다 진실하다. 동시에 세 가지 교육의 차원은 교육에 대한 오랜 논쟁에서 늘 타당성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 “교육의 미래에 대한 관심”은 가장 지속적인 것이다. 사실 17세기 코메니우스(John Amos Commenius)등에 의한 연구에서 혹은 Augustus Hermann Francke와 Johann Pestalozzi, Friedrich Froebel과 Johann Herbart 등의 연구에서 교육은 주제 중심적이거나 학생의 경험 중심적인 차원의 접근으로 논쟁되어 왔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 듀이는 교육에서 현재적 경험과 과거 지식이 서로 대립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모든 경험은 전에 지나간 것으로부터 어떤 것을 취하고 어떤 방식으로든 앞으로 올 것들의 질을 수정해야 한다.”
시간은 우리를 넘어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무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재적 경험 안에서의 시간이다. 시간 안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있었던 것과 지금 현재 있는 것으로서 나를 결합하고 앞으로 있어야 할 것 역시 지금 나의 존재 속에서 결합되어 그 암시적 형태를 갖는다. 이러한 시간 개념은 하이데거적 실존과 관련이 있다. 시간 안에서 나는 세계 내 존재로서 피투되어진 존재임과 동시에 기투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실존적 시간 이해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 교육활동은 모든 시간, 곧 현재, 과거 미래에 주의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