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헨리 조지가 열렬하게 주장했던 지대조세제는 그가 별세한 이듬해인 1898년에 중국의 독일 조차지(租借地)였던 교주(膠州, 자오저우)에서 실천되었다. 마침 금년은 실시 100주년이 되는 해로서 기념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교주 사례는 지대조세제를 현실에 적용한 최초의 사례이자 그 이상에 가장 가까운 실천 사례로 꼽힌다.
19세기 후반 열강이 중국을 침략하던 무렵, 영국 프랑스 등을 모방하면서 식민지 확보에 열을 올리던 독일이 1898년 청나라와 조약을 체결하고 교주만(膠州灣) 일대 400평방마일을 99년간 조차하였다. 교주만은 중국 산동(山東, 산둥) 반도의 남쪽 연안에 있는 만으로서 황해로 나아가는 입구에 청도(淸島, 칭다오)가 있다. 독일은 이곳에 동양 함대의 기지를 설치하고 청도와 제남(濟南, 지난)을 연결하는 교제(膠濟, 자오지) 철도를 부설하였다. 원래 작은 어촌에 불과하였던 청도는 이를 계기로 중국의 중요 무역항으로 부상하였다. 이 조차지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일본군에게 점령당하였고 1922년 중국으로 반환되었다. 따라서 최소한 1898년부터 1914년까지 16년 정도 지대조세제가 존속하면서 청도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오늘날 청도는 인구 146만(1990년 현재)을 상회하는 도시로 발전하여 상해(上海, 상하이), 천진(天津, 톄진)과 더불어 섬유공업의 3대 중심지를 이룬다. 또 청도는 상해, 천진, 여대(旅大, 여순, 대련) 등과의 정기항로도 열려 있어 대외무역도 활발하며 경치가 아름다워 휴양지로도 유명하다. 청도의 위도는 북위 36도 정도로서 우리나라 포항과 비슷하다.
1897년 11월 14일 독일은 디드릭스(Otto von Diedrichs) 해군제독의 지휘 하에 이 지역을 점령하였다. 점령의 외형적 명분은 독일인 선교사 2명이 살해당한 데 대한 보복이라고 하나 실은 독일제국이 다른 유럽 국가처럼 극동에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속셈이 있었음은 공지의 사실이다.
독일은 이미 아프리카에서 식민지를 …
독일은…
참고문헌
이성욱·한상근·최명근, 토지세제의 평가와 향후 정책방향, 한국조세연구원, 1993.
한국조세연구원, 주요국의 조세제도, 1996.
손문, 이명구 역, 삼민주의, 삼성문화문고 13, 삼성문화재단, 1972.
Andelson, Robert V. (1997) Land-Value Taxation Around the World, 2nd. ed., New York: Robert Schalkenbach Foundation.
Brown, Harry G. et al., eds. (1955) Land-Value Taxation Around the World, New York: Robert Schalkenbach Foundation.
Lindholm, Richard W. and Arthur D. Lynn, Jr., eds. (1982) Land Value Taxation, Madison: The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Silagi, Michael (1984) `Land Reform in Kiaochow, China,` American Journal of Economics and Sociology, vol. 43: 167-177.
`What Happened When Site Revenue Was Adopted: Danish Experience,` Progress, Newsletter of Tax Reform Australia, Jan/Feb, 1998, pp. 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