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Ⅲ. Juan Facundo Quiroga (1788/1790-1835)
Juan Facundo라고도 알려진 그는 La Rioja주에서 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상당히 부유했으나, Juan은 기본적인 읽고 쓸 줄을 배우는 정도로 정식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 소년기의 대부분을 집의 농장에서 일하며 보냈으며, 이 때 리더십과 기민함의 자질을 보였다. 1806년에 아버지의 소떼를 담보로 도박을 하다 모두 잃어, 가출을 했다. Quiroga는 군복의 안팎에서 몇 년을 보냈다. 그는 기병대와 보병대 둘 다 가입했지만, 형식적인 군대 생활의 훈련과 규율을 혐오했다. 결국 그는 탈퇴를 하고집으로 돌아와서 아버지와 화해를 했다. 1816년에 주군대의 우두머리가 되면서부터 Quiroga는 자신의 정치적이고 군대상의 직위가 상승되기 시작했다. 1823년까지 그는 La Rioja주의 실권자가 됬?? 전쟁에 대한 노련함과 꺾이지 않는 용기와 대담함등은 그를 기마군대의 절대적인 충성을 명령할 수 있게 만들었다.
본거지인 La Rioja에서부터, Quiroga는 그의 지배력을 부근의 주들로 확대시켜나갔고, 이윽고 국가의 정치권을 획득했다. Argentina는 1816년에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지만, 국가의 지도자들은 상임 정부의 형태에 동의할 수 없었다. 1826년에 Bernardino Rivadavia가 대통령이 되어, 부에노스 아이레스로부터 정부의 통일된 체제를 설립하려고 시도했다. 이에 반대하여, Quiroga는 다른 주의 caudillo들과 연합하여, 1827년에 Rinadivia가 사임하는데 힘을 보탰다. 일련의 전쟁의 시소놀이 후에, 결국 Quiroga는 1831년에 국가의 내부에서 통일된 세력을 붕괴시켰고, 여러 주들은 실제로 자치를 하게되었다.
Quiroga는 곧이어 Juan Manuel Rosas가 독재를 강화하고 있던 부에노스 아이레스 주로 이동했다. 그 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