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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이 처음 창당되었을 때 당원 수는 고작 57명이었습니다. 한 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인원수로 따진다면 백 만배를 훨씬 뛰어넘는 규모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를 단순히 중국이 13억이라는 인구를 보유하고 있고, 공산당을 영구적인 집권정당으로 삼고 있는 당정체제이기 때문이라고 치부해 버릴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그 거대한 중국대륙을 장악하는 과정에서―특히 국민당과의 투쟁을 통해―보여준 무한한 열정과 에너지는 수 십년이 지난 이 시점에 살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여전히 큰 경외감을 자아냅니다.
오늘 우리는 중국 공산당의 창당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중국공산당의 창당에는 차르정부와 부르주아 정부를 차례로 무너뜨린 볼셰비키의 지원이 가장 큰 동력이 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보이틴스키의 방중으로 공산주의 조직들이 여러 도시에 설립되었고, 공산당의 창당 역시 마링의 방중기간중에 이루어 졌으니까요. 그러나 보이틴스키나 마링의 방중 이전에 이미 리따자오나 천두시우와 같은 지식인들은 맑스주의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고, 프롤레탈리아 혁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1910년대 후반에 일어난 여러 국제적 사건들에 기인한 바가 큽니다.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10월혁명의 성공, 그리고 파리강화회의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된 중국의 5.4운동이 그것이지요. 보이틴스키나 마링의 방중이 없었고, 그로 인해 맑스주의 세력의 신속한 조직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중국 공산당은 자체적인 역량으로 성립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방금 이야기한 국제적 동향들이 없었다면, 중국내에서 맑스주의에 관심을 가졌을 지식인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중국이 근대를 거치는 동안 세계사의 조류에 급속히 편입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서방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들만의 사건으로 그치지 않고 금새 중국 내부에 영향을 미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