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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는 마을에서 개구쟁이로 소문 났을 것이며 혹 어머니, 아버지 말씀을 안들어 꾸중 듣기도 했을 거라 짐작됩니다. 하지만 세 살 되면서 아버지로부터 천자문을 배웠다는 건 좀 무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정약용이 아무리 똑똑했다 해도 그렇게 어린 나이에 천자문을 배웠따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때, 정약용은 책을 읽음으로써 슬픔을 극복할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책 읽는 것이 그의 적성에 맞았나 봅니다.
정약용은 자라면서 집안 환경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천주교를 알게되었습니다. 본래 성품이 곧고 어진 정약용으로서는 유교의 양반과 상민의 구별, 지나친 예의 숭상 같은 것들이 못마땅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은 빈부 귀천이 없이 모두 똑같이 사랑해 주신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던 것입니다.
탐관오리의 횡포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제도를 바로잡고,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쳐 나갔던 점은 모든 정치가들이 본받아야 할 부분입니다. 정약용은 이처럼 훌륭한 정치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유배지에서 20여년의 세월을 보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