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마르틴은 어느 누구도 침범해서는 안 되는 혼자만의 영역을 가지고 있었다. 엘프리데는 마르틴과 가정을 꾸렸지만 그 가정은 마르틴의 연구, 학문적 생활을 위한 희생의 장이었다. 그 점에서 엘프리데는 마르틴과 함께일 수 없었다. 이는 한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마르틴을 사랑했지만 결코 그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에게는 마르틴과 함께함을 결정할 수 있는 어떠한 권한도 주어지지 않았다. 엘프리데와 한나, 그 둘은 마르틴을 두고 경쟁하는 사이였지만 동시에 마르틴과의 관계 속에서 상처입는 동일한 구조 속에 속한 인물이기도 했다. 티격거리는 그들의 모습은 한 남자를 두고 벌이는 여성들의 질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치즘이라는 거대한 화두를 두고 벌이는 한편의 전쟁이기도 했다. 민족의 부흥을 꿈꾸었을 뿐, 나치의 어떠한 말살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고 이야기하는 엘프리데의 모습은 시온주의자인 한나에게 모순 그 자체였다. 하지만 한나는 시대가 만들어낸 악독한 이들의 내면에 숨쉬고 있는 인간성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