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난 나름대로 객관식 문제들에 잘 적응한 사람이었다. 전혀 원리가 이해되지 않는 수학문제를 암기해서 풀고, 심지어 수능 시험을 볼 땐 도형을 자로 재서 답을 맞추는 다소 엽기적인 행각도 벌였었다. 교과서 이외의 책은 단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었지만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데 그다지 큰 문제를 겪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있어서 교양이라고 하는 것은 문제를 하나 더 맞추는 것에 불과할 뿐, 그 이상의 무엇인가를 뜻하지 않았다. 물론 우리 나라의 모든 고등학생들이 나와 같이 책을 전혀 안 읽고 단편적인 사고를 하며 살고 있음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책이 특별해 보이는 것에 어느 정도 우리 나라의 기형적인 교육제도가 영향을 미쳤음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러한 교육제도의 문제는 대학에서도 고대로 답습되고 있다. 기초, 순수 학문을 등한시 한 체 취업이 잘 된다는 이유로 모든 이들이 응용 학문에만 매달리고 있다. 기업에서는 상경, 경영 분야를 전공하지 않은 이의 이력서는 읽어보지도 않고 바로 쓰레기통으로 던져 버린다는 이야기까지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현실이다. 이런 사회 속에서 교양을 꿈꾸고 철학을 공부하길 바라는 것은 허황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