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박노자. 그의 이름만으로도 나는 설레인다. 언제나 그의 책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파란 눈의 한국인인 그가 지닌 지적 능력과 열린 마음 그리고 한국에 대한 애정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나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준다. 그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한국 근, 현대사를 바라보는 냉철한 눈을 가지고 있다.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내게 있어 하나의 축복과도 같다. 지난 식민지 경험은 우리의 역사에 있어서 일종의 완충지대와도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도덕적인 옳고 그름, 가치판단을 떠나서, 현재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폭력성과 권위주의, 정치에 있어서의 낮은 성숙도 등을 이야기할 때마다 식민지 역사가 그 원인으로 거론됨으로써 우리는 우리 역사, 현실의 어두운 면에 한 책임을 회피하려 든다. 물론 식민지 역사가 우리 사회의 성숙을 방해한 것은 어느 정도는 옳다. 일제 지배를 정당화하거나 찬양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다. 다만, 모든 것의 원인을 식민지 경험으로 돌림으로 인하여 지난 역사를 보다 명확하게 분석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저자의 이야기들은 지금껏 생각해보지 못했던 또 다른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게 해주고 있다. 조선 말기 이미 민중들은 지배층의 가렴주구에 충분히 괴로워하고 반발하고 있었고, 당시 조선 사회는 이미 그 내재적인 모순으로 인하여 어느 정도 붕괴를 암시할 수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우리는 한 걸음 더 진보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는 수많은 영웅들과 배신자들을 양산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