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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통하여 책을 주문하는 일이 꺼려지는 구식인 나는 여전히 구내 서점의 귀빈 대접을 받고 있다고 믿어지지만 구내 서점의 김 여사는 귀빈이 행차했다는 예의 그 요란한 눈 인사만 빼고는 예외를 용납하지 않고 삼만원 구매를 채워야 현란한 솜씨로 계산기를 두드려 책 값의 15%을 할인해준다. 정기적으로 사들이는 잡지 몇 권에 삼만원을 채우기 위해 사들인 책이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이라는 장황한 제목을 가진 책이었으니 내가 이 책을 그 짧은 순간에 고른 연유는 이러했다.
먼저 미색 아트지의 표지 지질(紙質)이 마음에 든 때문이요, -이런 아트지에 크로키한 다음 침을 바른 엄지 손가락으로 연필의 흑연가루를 살살 문지르면 그림이 상당히 그럴 듯 해보인다. 거두절미, 아울러 <걷기 여행>이라는 큰 활자의 제목이 눈길을 사로 잡은 때문이며, 책 겉 표지의 반 이상을 차지한 내가 좋아하는 진 초록빛 수풀 배경 때문이고, 그 배경으로 관리 안된 컷트 머리에 회색의 금속 테안경, 카키색 반바지, 같은 색깔 등산 셔츠, 이 모든 풍경과 기묘한 조화를 이루는 단단한 등산화와 발 아래 놓은 배낭이 담긴 표지 사진이 마음에든 때문이었는데 사무실에 돌아와 잡지의 대강을 훑어본 다음, 마지 못해 사들인 <걷기 여행>을 대충 뒤적거려보는 사이 `에효`하는 한 숨이 절로 나온 것이니 이 미욱한 암체어 트레블러(armchair traveler)의 염장을 지를 여행기임에 뻔하니 그러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