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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현상은 국가 재정에 커다란 손실을 가져다 주었고, 이에 국가는 조세 부담을 농민에게 가중시키게 되었다. 진성여왕 3년(889)전국에 대한 공부 독촉이 실시되자 각지에서는 농민과 지방세력들이 봉기하게 되어 농민반란이 시작되게 된다.
Ⅱ. 농민항쟁의 전개
1. 농민층의 봉기 봉기
전근대사회에서 국가나 귀족들의 과중한 수취에 대한 농민들의 소극적인 항쟁의 한 형태는 유망이었고, 유망민들을 포함하여 생계자체가 곤란한 농민들은 개별적으로 남의 재산이나 곡식을 약탈하기도 했다.
신문왕대 도적이 사라져 사회가 안녕하기를 소원한 기록은 신라중대 도적이 적지않게 발생했음을 알 수 있고 정치적으로 혼란한 혜공왕대는 중앙집권적인 지배체제가 문란해지면서 수취량이 늘고 흉년과 대기근이 겹쳐 농민의 상당수가 도적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으로 신라 하대에 이르면 농민들은 생존을 위해서 자손을 노비로 팔거나, 일본으로 가서 해적질을 하거나, 당나라로 식량을 구하러 가거나 또한 도적이 되기도 했다.
헌덕왕 11년 소규모 조직을 이루어 장기적이고 일상적인 활동을 하는 도적집단. 즉 초적(草賊)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고, 이를…
참고문헌
• 「한국사」(4) 진덕재 1994 「신라 하대의 농민항쟁」
• 「신라문화」10. 11 항집 김갑동 1994 「신라의 멸망과 경주세력의 동향」
• 「한국고대사요론」 형설출판사 제6장 「통일신라와 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