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소설은 그 오랜 벽을 자진해서 넘어간 행성 아나레스의 물리학자 쉐벡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아나레스와 우라스는 쌍둥이 행성이지만, 그 체제는 상이하다. 관료주의와 집단주의에 의한 빈부격차와 남녀차별이 극심한 우라스는 혁명가 오도의 주도 하에 ‘평등하고 모순 없는 사회’를 지향하는 아나레스에서 온 쉐벡을 경계하고 감시한다. 쉐벡은 오도의 아나키즘 혁명이 있은 후 200년이 지나면서 자체모순을 드러낸 아나레스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자발적 조직’의 일원으로 우라스로 넘어온 것이었다.
하지만 쌍둥이 행성 우라스는 아나레스와는 너무 다른 사회, 숨막히는 위계와 편견 속에서 그 뿌리부터 곰삭은 모순을 질병처럼 앓고 있는 사회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전혀 다른 의미와 반향을 지닌 단어들에서부터 우주를 해석하는 과학적 관점의 이질성 등은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사실들에 대한 엄청난 혼돈과 분열을 야기한다. 이럴 경우, 과연 벽은 허물어진 것일까? 어쩌면 더 큰 벽과 요지부동의 단절감이 벽 바깥의 전부는 아니었을까? 소설은 이런 끝없는 질문 속에서 안이기도 하고 바깥이기도 한 벽의 양면을 수시로 넘나든다. 그러면서 인간의 오랜 역사와 현실의 첨예한 대립상들이 범상찮은 알레고리를 형성하면서 읽는 이를 끌어 당긴다. 그건 가히 어떤 소설에서도 발견하기 힘든 인류에 대한 거시적인 사유의 집성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