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01
밥을 굶어서라도 책을 사던 나의 문학청년(?)시절 나는 초판본 구하기와 더불어 금서(禁書) 모으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청계천과 서울역 주위 그리고 대학가 주위의 헌 책방에서 사라지고 말 것에 대한 조급함으로 가슴 졸였던 기억이 난다. 베스트 셀러 목록으로 대형 서점에 김우중의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같은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갈 때 박노해의 『나의 사랑 나의 조국』을 고 서점에서 발견하는 일은 나에게 기쁨이었다.
그 때 손에 넣게 된 것이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였다. 간행물심의위원회와 사법부, 시민 단체에 의해 사회적 통념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음란물 취급을 받아 판매금지 되었던 책.
02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숱한 이론과 설명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문학이 의사소통이라는 데에 합의하고 있다. 문학이 의사소통이라면 진정한 의사소통은 악과의 대화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진정한 작가는 문학에게만 유일하게 부여된 그 능력과 특권을 자랑스럽고 고통스레 받아들인다. 악과 의사소통하는 문학, 그것은 이미 유죄인가?
03
사드나 보들레르가 그랬듯이 문학의 유죄성을 벗겨 줄 것은 시간밖에 없다. 고통스럽지만 작가는 그 사실 또한 자랑스레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문학만이 시간을 살아남기 때문에. 그렇다면 시간만이 유죄인 문학을 무죄로 건져 올릴 수 있다는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당대의 사회적 통념이 규정해 놓은 선악 개념이 또 다른 당대에서는 바뀐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문학은 다시 유죄이다. 그것은 미래의 선악을 미리 선취하려는 죄를 지었다.
이렇듯 무섭고 불온한 존재인 한 어떻게 사회가 문학을 용서하겠는가? 이상국가를 꿈꾸었던 플라톤이 시인 추방을 주장한 까닭은 바로 그래서이다. 건전한 사회는 절대 문학이 발붙일 틈을 주어서는 안된다. 하여 장정일의 소설을 문제 삼고 금지시킨 시민단체와 간행물 윤리위원회의 논리 가운데 하나를 용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