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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간섭 3국 사이의 이해대립과 일본의 간섭 극복
먼저 3국의 이해 대립은 독일이 1885년 6월 7일을 기해 자국의 주러 대사 라돌린(Hugo. L. Radolin)으로부터 미구에 체결될 러청차관협정(露淸借款協定)에 대한 정보를 접한 후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3국 사이의 갈등이 일본에 알려진 것은 이로부터 약 1개월 뒤의 일이지만, 이는 일본이 굴욕적인 각의 결정을 한 지 불과 3일 뒤의 일이었다. 차관 공여를 통한 중국에서의 이권 분할에 독일이 제외되자, 독일은 대청차관문제는 영국과 협력하는 한편, 요동반도 전환문제는 전과 반대로 일본의 주장을 변호 내지 지지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급선회했던 것이다. 일본대표가 3국공사를 상대로 회담하고 그 회담 장소가 바로 도쿄였기 때문에 일본정부는 이 같은 3국 사이의 대립 분위기를 즉각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독일의 러시아와의 대립을 지속적으로 표명할 수는 없었다. 러시아를 동아시아로 진출하도록 유도하려는 비스마르크 외교의 기본 틀을 손상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전통적인 기본정책은, 3국 간섭 참여를 통해 러불동맹을 불구화시키고 러시아의 동아시아 진출을 유도함으로써 영국과 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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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산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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