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생애와 작품
칼 슈테른하임 Carl Sternheim은 1878년 라이프찌히에서 태어나 하노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후 1884년 베를린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성장했다. 그 곳에서는 특히 극장 소유주였던 아저씨를 통해 일찍부터 연극을 접할 수 있었다고 한다. 1897년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는 전형적인 빌헬름 시대의 분위기 속에서 일찌감치 부유한 시민계급의 `세속 문화`에 편입되어 살았으며, 유태인 은행가였던 부계의 부유함과 전통적인 독일 명망가 출신이었던 모계의 피를 이어받아 특별한 존재라는 자부심 속에서 자라났다.
1898년부터 뮌헨, 라이프찌히, 괴팅엔에서 - 1900년부터 1901년 사이에는 몇 번 학업을 중단하면서 - 독문학, 예술사, 철학 그리고 법학까지 공부하였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그 후 그는 1906년 프라이부르크에서 하인리히 리커르트 Heinrich Rickert의 강의를 듣고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가 독자적인 사고를 확립할 수 있게 된 데에는 빈델반트 Windelband와 리커르트 외에 쉘러 Scheler와 훗설 Husserl의 영향도 컸다. 그들은 그에게 `자연과학적 개념형성의 한계`를 가르쳐주고 `보편성의 이름 하에 횡행하는 정신적 무정부주의`에 대항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들을 통해 슈테른하임은 다아윈과 프로이드에게 인간의 기계화와 사물화에 대한 책임을 물었으며 나아가 칸트, 헤겔, 맑스에게도 반기를 들었는데, 그에 따르면 이들은 현대의 가치하양 평준화와 모든 개성의 상실을 야기한 주범이라는 것이다. 그는 `개성이 소리없이 죽어버렸다`({전쟁 전 유럽 Vorkriegseuropa}, 88 쪽)고 개탄했다. 이러한 인식을 통해 그는 10년 후 극단적인 수단을 통해서라도 개성을 재건하기 위한 문학적 작업을 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