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3세기 초 몽고족의 여러부족을 통일한 칭키스칸은 중앙아시아의 서하와 호라즘 등을 정복하고 동서 무역로를 확보하여 몽고제국을 건설하였다. 그 후 유럽과 서아시아까지 진출한 몽고는 세조때에 이르러 국호를 원이라 하고 금과 남송을 멸망시킴으로써, 중국전체와 유럽대륙에 걸친 대제국을 이룩하였다. 대제국의 광대한 영토를 통치하기에 곤란을 느끼게 된 몽고는, 역참제를 실시하고 중국을 다스리는 원과 나머지 지역의 4한국으로 분열되었다. 한편 원은 민족 차별 정책 펴 몽고인과 색목인은 우대하고 한인과 남인을 천시하였는데, 이는 중국인들의 불만을 사는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불만이 누적되어 일어난 농민 반란과 라마교의 폐해 등으로 원은 명에 멸망하였고 4한국도 쇠퇴하였다. 당나라가 쇠약해진 틈을 타 절도사였던 주전충의해 당이 멸망하자 황하유역에는 5개의 왕국이 그 남쪽에는 10개의 크고 작은 나라가 일어나 어지럽게 다투어 흥하고 망하기를 거듭하였는데, 이때의 중국을 5대 16국이라고 한다. 이 중 후주의 조광윤은 중국의 지배자가 되어 카이펑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송'이라고 하였다. 황제가 된 조광윤은 제일 먼저 군인의 세력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하였다. 문치주의를 근본 방침으로 삼아 과거제도를 개혁하고 문신을 우대하였으며 절도사의 권한을 빼앗았다. 그러나 이러한 문치주의는 국방력의 약화를 하져와 수많은 북방민족의 침입에 시달리게 하였다. 그것을 스스로 지킬 힘이 없던 송나라는 재물을 바쳐 비위를 맞추는 식으로 외적의 침입을 피해야 했다. 게다가 방대한 관리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했으므로 백성들은 무거운 세금에 허덕이는 생활을 해야했다. 왕안석의 변법은 이와 같은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주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