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봉건적 경제요소
서구 자본주의는 중국의 봉건세력과 결탁하여 병기와 차관을 제공하면서 지배적 토대를 구축하였다. 그리고 봉건적 토지제도, 상업 및 고리대 그리고 각종 노예제도의 잔존에 의한 착취 등을 통해서 경제적 기반을 파괴하였다. 봉건적 착취제도의 근원은 계속 유지되었고, 매판자본과 고리대 자본에 의한 착취는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20세기초 중국 총 농업의 약 30%가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소작민이었다. 지역별로 소작의 정도를 보면, 어느 성에서는 남부지역에 있는 1~2개 현의 소작률은 낮고, 다른 10여개 현의 소작률이 60~70%로 높아 소작률 역시 50%이상 이었다. 해안지역의 소작률은 적정수준(10~40%)이나, 일부지역은 높게 나타났다.
중국 공산당은 1940년 말과 1950년 초 토지개혁이 진행되는 동안 약 7억 무, 혹은 총 경지면적의 약 43%를 분배하였고, 이들은 농경이 아닌 다른 원천에서 초기의 부를 축적했다. 1930년대에 1,000무 이상의 토지를 소유한 374명의 지주중 164명이 군인이나 정부관료, 129명이 고리대금업자, 89명이 상공업을 통해서 초기의 부를 축적했다. 18~19세기의 고위정부 관료 가운데 100만 무 이상의 토지를 소유한 자들도 많았다. 농민은 현물형태로서 초과부담의 식량을 지주에게 납부하였고 노역에 의한 소작료도 존재하였지만 화폐에 의한 소작료는 발전하지 못하였다.
아울러 소작료 이외에도 오금, 소작료의 전불, 부역노동, 무상노동 및 가사노동의 제공 등 원시적인 착취형태가 존재했다. 부농은 토지의 일부를 소작으로 제공하거나, 고리대로 내주어 반봉건적 성격을 지닌 채 자본제적 생산단계로 발전하지 못했다. 또한 농업 및 목축생산물 수출은 끊임없이 증대하여 수출 전체에 대한 비중도 1903년의 26.8%에서 1920년 36.4%, 1930년 45.1%로 점차 증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