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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임진왜란의 경과
선조 25년(1592년) 마침내 일본군의 조선침략은 시작되었다. 육군 정규 병력만 해도 157,800명, 수군 9,000명, 그 외의 많은 병력이 투입되어 전체 병력은 약 20여만 명에 이르렀다. 4월 14일 ‘소서행장’이 이끄는 1분대가 부산 진을 처음 침략하여 조정에서는 모두 왜군에게 대패하여, 부산 진을 침입한지 보름만에 왜군은 서울까지 북침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왕은 4월 30일 서울을 떠나 개성으로 피난하고, 왜군의 1번대와 ‘가등청청’의 2번대의 서울 점령 후 왕은 다시 평양으로, 의주를 왜군의 북침에 관군들이 모두 무기력하게 대패하자 왕은 북으로 계속해서 피난지를 옮겨갔다. 그 과정에서 소서행장이 이끄는 군대가 6월에 평양을 점령하고 가등청청군은 함경도에 침입, 그 곳에서 두왕자까지 인질로 잡게 되고, 제 3번대인 ‘흑전장정’의 군대가 해주를 장악, 호남지역을 제외한 거의 전 국토가 왜군의 점령에 들어 가게된다. 그러나 6월이후 8도 전역에서 의병들과 의승군이 봉기하여 무력한 관군을 대신하여 적군을 격파했고 수군 또한 활약이 커서 전세를 만회할 수 있는 길이 트이기 시작했다.
그즈음 선조는 피란도중에 사신을 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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