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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자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자 : 미용(美庸), 호는 사암・탁옹・태수・자하도인・철마산인・다산(茶山)
당호 : 여유(與猶)
경기도 광주군 초부면 마현리(지금의 양주군 와부면 능내리 소내(召川) 마재(馬峴)) 출신
아버지는 진주목사 재원(載遠), 어머니는 해남윤씨로 두서(斗緖)의 손녀로 이 둘 사이에서
4남(약현・약전・약종・약용)2녀 중 4남으로, 1836년 2월 22일 75세의 나이로 죽었다.
15세 때 풍천홍씨(豊川洪氏)를 취하여 6남3녀를 두었으나 4남2녀는 요절하고 학연(學淵)・학유(學遊)와 서랑 윤창모(尹昌謨)가 있을 뿐이다.
< 다산 정약용의 생애 >
그가 4세가 될 때 벼슬을 그만둔 아버지로부터 천자문을, 6세 때는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배웠다. 1776년에 영조가 죽고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장헌(사도)세자를 두둔하다가 밀려났던 아버지가 호조 좌랑에 임명되면서 15세 된 그도 서울에서 살게 되었다. 이듬해, 그는 실학자 이가환 및 매형인 이승훈(李承薰)을 통해 서양의 새로운 학문을 소개받았으며, 특히 실학자 이익이 남긴 `성호사설` 등의 글을 읽고 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