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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에서는 `결가부좌`라는 앉음새가 있지만 중국에 와서는 이미 좌법(坐法)을 넘어서 선은 서거나 눕거나 간에 그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할 수 있다고 보게 되었다. 사실 우리들의 마음은 잠시도 쉬지 않는다. 눈, 귀, 코 등을 통해 끊임없는 동작이 계속된다. 이 계속되는 동작 속에서 동작의 원동력 즉, 주인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외부의 세계로 관심 하면서 방황한다. 오랜 시간을 이렇게 살아 온 나머지, 그 주인인 마음을 잊어버리고 바깥 사물이 주인인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참선은 이 잊어버린 주인을 찾는 일이며 바깥으로 달아나는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려는 훈련이다. 그런데 마음을 한 곳에 모으기 위해서는 화두(話頭)를 가지게 된다. 화두는 공안(公案)이라고도 하는데 공안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역대 조사(祖師)들이 보이신 공안만도 1,700이 넘는다.
공안이란 곧 의심의 뭉치다. 예를 들면, `달마스님께서 인도에서 중국에 온 뜻이 무엇입니까?`하고 어떤 스님이 물었는 바, 조주(趙洲) 스님이 이에 대해 `뜰앞의 잣나무!`라 했다. 이것은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무슨 뜻인가, 어째서 뜰 앞의 잣나무라고 했을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그 의심이 풀릴 때까지 의문을 던지게 된다. 화두를 들고 의심을 해 갈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일념으로 의심만 계속할 뿐 이리저리 따지거나 분별해서는 화두가 연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망상만 더욱 조장하게 된다. 그러므로 참선에는 세 가지 마음의 준비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첫째, 대신근(大信根)이 있어야 한다. 대신근이란 철저한 믿음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물론 화두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져야 한다.
둘째, 대분지(大憤志)다. 대분지란 원수를 만난 듯한 분개심이다. 마치 모기가 바위를 뚫는 듯한 각오를 세워 정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