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소설에서 표현되어진 대상은 펀치와 함께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 대항할 수 있는 것이기에 펀치를 날릴 수 있는 이유가 있으며 그로 인한 쾌감이 있다. 그러나 영화 속에 나타난 대상은 이길 수 없는 대상, 그러기에 분명히 존재하면서도 확실치 않은 허무한 무엇이 되고 만다. 즉, 츠다와 고지마의 복싱은 히즈루로 대체된 여고생을 사이에 두고 여고생을 죽인 도쿄 사회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거대한 도쿄는 결코 맞설 수 없는 대상이기에 츠다와 고지마는 서로의 나약함을 조롱하며 도쿄가 아닌 서로에게 복수의 펀치를 날리게 된다. 애초부터 잘못 조준된 펀치이기에 이들의 폭력은 해갈될 수 없다.
또한 도쿄는 자신의 엄청난 주먹을 숨기고 허무한 펀치에 인간들을 열광하게 한다. 이것은 희생을 요구하는 제의와 같은 형식으로 볼 수 있으며 그 희생을 통한 카타르시스의 주체 혹은 참여자는 영화 속에서 복싱에 열광하는 관중뿐 아니라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에게까지 이어진다. 제의는 공동체 내부에 질서를 회복시키는 최초의 자연발생적 사형死刑으로 반복적으로 행해진다. 희생양은 주위의 온갖 오점을 대변하며 이를 바라보고 행하는 공동체는 굴욕의 약자에서 지배의 강자로 변신한다. 그리고 사형死刑이 집행되는 순간, 공동체는 서로가 서로의 알리바이가 되어 주며 해로운 폭력을 이로운 폭력으로 전이한다.
영화 속에 나타나는 복싱은 죽음은 아니더라고 말 그대로 죽도록 얻어맞는 행위, 즉 도쿄라는 거대한 복수의 대상을 대신한 4각 링으로 합법화된 희생양으로써 보여진다. 그리고 영화는 이 영화를 바라보는 관객을 이 잔인한 제의에 초대한다. 다만, 관객은 이 영화를 통해 정화보다는 불쾌감을 느낄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제의의 마취에서 깨어나 상황을 바로 보게 된다. 이 영화에서 전반적으로 사용되는 빠르고 차갑고 또 너무나 결렬한 나머지 거북스러운 이미지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