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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통일기 나당전쟁을 치루면서 삼국민들 사이에는 점차 동족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는데 삼한일통의식(三韓一統意識)이 그것이다. 이는 삼국을 동일한 한의 세 집단으로 인식하고 그 삼한이 하나가 되었다는 뜻으로 삼국을 중국이나 일본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문화적·종족적으로 동질성을 지닌 국가로 이해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식은 비단 삼국민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중국인들도 삼국을 ‘해동삼국(海東三國)’이라 부르고 삼국인을 ‘삼한인’으로 표현하며 흉노·일본과는 다른, 동일한 종족으로 인식하였다.
통일 이후 당을 중심으로 한 조공-책봉관계가 진전되면서 신라인은 화이론에 기반한 중국 중심의 천하관을 가지게 되었다. 이 화이론적 천하관은 중국을 선진적인 국제문화를 가진 화(華), 자국을 낙후된 문화를 가진 이(夷)로 여기고 선진 중화문화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강조하는 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신라는 스스로 군자국(君子國)을 칭하며 당의 여러 번국(藩國) 가운데서 자신의 나라를 문화적으로 제일 으뜸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신라인의 자기 정체성은 발해와의 대결의식에서도 잘 드러났는데 그들은 발해를 융적(戎狄)·고시국(楛矢國)으로 비난하면서 자국은 근화향(槿花鄕)으로 자부하였다. 또한 신라인은 제후국을 자처했지만 신라왕이 직접 진골 귀족을 책봉하는 등 모든 제도를 제후국의 격에 맞춘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자국을 하나의 독립적인 세계라는 생각을 아주 포기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신라인의 이러한 인식이 저변에 깔리고 동시에 후삼국 통일 후 높아진 자신감을 바탕으로 고려시대에 가면 다원적 천하관이 등장하였다. 다원적 천하관은 진정한 천자는 하나라는 자국 또는 중국 중심의 일원적 천하관과는 달리 천자가 여럿이 병존하고 이들이 각각 자신이 속한 천하를 다스린다는 관념이었다. 이에 의하면 송뿐만 아니라 고려·요·금 등이 모두 소천하(小天下)의 중심국인 것이다. 문화도 유지할 것은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