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 ‘절대로 슬프다거나 가엾어 하거나 하는 감정에 빠지지 아니하고’ 또는 ‘기쁨이나 노여움 등의 감정에도 움직이지 아니하고’의 뜻 2행이 병렬되어 제 5행의 ‘비정(非情)’이 어떤 세계인가를 구체적으로 해설하고 있는 대목이다. 애련 · 희로는 모두 인간 감정의 속성들인데, 이를 모두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 머언 원뢰(遠雷) : ‘오직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자연의 섭리에 좇아 오래고도 오랜 냉정심을 굳게 지니는 영원한 침묵만으로 내심(內心)을 안으로 안으로만 억눌러서, 드디어 내 생명이 갖고 있는 모든 애정과 집착을 초극하여 초월해 버리고, 흐르는 구름 따라 먼 원뢰 소리만 울리게 하고’의 뜻. 바위의 세계, 의지의 세계가 어떤 내용인가를 구체적으로 서술한 곳이다.
핵심이 되는 구절이 ‘비정(非情)의 함묵(緘黙)’인데, 일체의 감정이 개입하지 않은 침묵으로서, 이는 생명도 인간도 태어나기 이전의 원시적 침묵의 세계를 뜻하고 있다. 희로애락의 온갖 감정을 청산하여 원시적 침묵에 살겠다는 것이다. ‘흐르는 구름 / 머언 원뢰(遠雷)’는 지극히 짧은 표현이지만, 짧은 그것을 다시 2행으로 나누어 배치함으로써 시적 긴장을 일단 완화시켜 주고, 자연 섭리만이 지배하는 원초적 세계를 간결하게 보여 준다. 즉 생략과 긴축을 겸한 고도의 기교적 표현이다.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 어떤 이상을 가진다 하더라도 감정을 드러내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 파멸이 온다 하더라도 비명을 지르거나 불평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는 뜻. 시의 결구로서 꿈이나 파멸도 초극한 바위가 되겠다는 의지를 다시 다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