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트로이 성벽의 복원 모형: `전설을 역사로 바꾼 트로이`에서
한국의 발굴사: 초창기 발굴의 역사에는 웃을 수도 없는 비화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고고학 기술도 해가 다르게 진보했고, 지금도 많은 노력이 경주되고 있다. 문화예술분야에 투자하는 정부의 지원도 액수나 GNP 비율로 보면 선진국 수준이다. 그러나 아직도 전시용 혹은 개발이익에 밀려 시간에 \쫒기는 발굴도 많고, 발굴유물의 보존과 분석에도 미진한 점이 많다. 발굴 못지 않게 분석에도 최첨단 장비와 비용이 필요한데, 이런 장비의 사용에도 어려움이 많다.
한국의 고고학과 유적을 논할 때 우리 지형과 역사가 주는 애로사항도 있다. 한국은 산이 많고 인간이 거주하기에 적합한 지역이 제한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늘 도시 위에 도시가 새로 세워지고, 산성 위에 산성이 세워진다. 구석기 유적조차도 대규모로 밀집해서 나타난다. 전곡리 유적은 구석기만 수만점이 넘게 발견되었다. 이런 밀집도는 세계 최고의 수준이다. 그러나 이런 사정 때문에 현재의 거주 가능지역이나 농지는 대부분 유적지를 포함하고 있어 유적파괴가 쉽게 자행되고, 이것을 다 유적지로 지정하기도 곤란하다는 어려움이 있다.
또한 고대의 촌락이나 도시, 주거지의 규모를 알기가 어렵다. 부여 송국리 유적같이 촌락이 발굴되는 경우도 있으나(이 모형은 국립박물관에 있다) 이것이 당시의 표준적인 형태였는지, 산골의 촌락이었는지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는 지형이 산이 많고 거주지가 좁아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한번 명당이면 계속 명당이다. 그래서 집터나 성터가 계속 누층적으로 쌓인다. 이 과정에서 이미 많은 유적이 파괴되었다. 일례로 서울은 고려시대의 남경이었는데, 남경도호부 건물은 바로 경복궁 자리에 있었다. 조선을 건국하고 경복궁을 건설하면서 고려의 도호부 유적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1. 구석기 시대
구석기인의 생활: 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구석기인들은 무리, 군집생활을 하며…
구석기인의 생활: 환경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