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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통일 전 신라시대에는 향가가 주요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이들이 비록 순수한 한문학은 되지 못한다 해도 한자문학의 범주에서 제거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신라 최초의 가요인 《도솔가(兜率歌)》를 비롯하여 《회소곡(會蘇曲)》 《우식곡(憂息曲)》 등 많은 작품이 만들어졌고, 또한 향곡(鄕曲)으로 대악(樂)·현학(玄鶴) 등 8종류가 이루어졌으며, 당(唐)나라의 양식을 차용한 당체(唐體)의 시가(詩歌)로 《구지가(龜旨歌)》 《태평시(太平詩)》 등 6종목이 나왔다. 한편 귀토설화(龜兎說話)는 조선시대 《별주부전(鼈主簿傳)》의 모태가 되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때 강수(强首)의 명문이 당제(唐帝)의 노여움을 풀고 원정군을 파견케 한 일은 유명하다. 통일 후 신라는 유학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국학을 세우고, 교과서의 선정, 교수 방법, 학생의 선발요강 등을 발표하는 한편 과거에 화랑제(花郞制)로 인물을 선발하던 방침을 고쳐 독서삼품제(讀書三品制)를 실시, 지방의 관리까지도 독서 출신이나 당나라 유학생이 아니면 등용하지 않았다. 특히 설총(薛聰)은 이두문자를 창안하여 사상적 통일을 이룩하고, 신라어로써 육경(六經)과 모든 문학서를 훈해(訓解)한 업적은 크다. 통일신라에서도 향가는 여전히 주조(主潮)를 이루어 《제망매가(祭亡妹歌)》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 등 14종의 명작이 알려졌고 당체의 시가도 여러 편이 전한다. 소설은 신라 중기까지도 설화적인 계보에서 탈피하지 못하였으나, 이 시대의 대표작으로는 설총이 신문왕(神文王)의 위정(爲政)을 풍자한 《화왕계(花王戒)》를 들 수 있다. 이것은 양적으로는 극히 짧은 작품이나 깊은 우의(寓意)를 담고 있어 실로 한국 풍자소설의 효시라 할 수 있다. 이 밖에 김대문(金大問)의 《계림잡전(鷄林雜傳)》 《화랑세기(花郞世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