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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논리의 가장 손 쉬운 교육장인, 가족제도가 흔들리면 자본주의 사회와 산업화 사회는 그 근본이 흔들린다는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청소년기에 다 한번 이상은 기존의 가족제도에 대해 회의하는 것은 가족구성원 전체의 합의로 도출하지 않은 지배 도덕률의 시험장이 바로 가족제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동성애자들이 가족제도의 모든 미덕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치사회 지배체제의 확실한 연결고리이자 통치단위인 가족제도를 보호하기 위한 희생물이 왜 동성애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동성애는 전염되며, 동성애자의 인권을 인정하면 모든 이성애자가 동성애자가 되어서 인류가 멸망(?) 한다는 환상에 사로 잡히지 않는 이상 말입니다.
이러한 억압의 근거를 위해 지배체제는 동성애를 억압하기 위한 소위 과학적 연구를 19세기 말부터 시작합니다. 온갖 잘못된 편견과 오도된 임상실험속에서 동성애자는 이 사회에서 격리되고 없애야 될 정신병자로 취급받기 시작합니다. 물론 1973년 미국 정신과 의사협회를 필두로, 오늘날 모든 사회에서는 더 이상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분류하진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에게 뿌리내린, 동성애자에게 지워진 편견의 대부분은 이 시기에 형성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탄압과 동시에 19세기의 끝머리에서부터 동성애자들의 투쟁 또한 시작되었습니다. 독일의 히르쉬펠트로부터 시작된 이 역사는 당시의 사회 변혁 운동과 함께 진행되었으며, 1917년 러시아 혁명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명문의 법 조항을 만들어 냄으로써 그 절정에 이릅니다. 그러나 혁명이 변질되고 자본주의의 공격이 다시 시작되면서부터 이 역사는 서서히 잊혀져 가기 시작했고, 나치의 동성애자 학살에 이르러서 동성애 억압은 극에 달합니다. 나치는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동성애자들을 탄압하여, 그들에게 분홍 트라이앵글을 붙이고 학살했습니다. 요즘은 이 분홍 트라이앵글이 동성애자의 자부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