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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의 역사는 길다. 에덴동산에서 금단의 과일을 따먹는 순간부터 인간은 부패라는 죄악의 사슬에서 헤어나지 못하였다.
원시수렵 사회에서 공동으로 사냥한 멧돼지를 놓고 누군가 맛있는 살점을 슬쩍했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무한을 추구하는 욕망이 부패를 불러오고 탐욕으로 이어지면서 윤리와 종교, 법제를 통한 규제가 나타나게 되었지만 부정부패는 끊이지 않는다.
한국사에도 부패의 ꡐ살점ꡑ은 도처에서 나타난다. 신라 선덕여왕 11년(642년) 원병을 요청하러 고구려에 갔던 김춘추가 첩자 혐의로 감금되자 신라는 고구려 보장왕의 총신인 선도해(先道解)에게 청포 3백보(三百步)를 주고 탈출시켰다는 얘기가 〈삼국사기〉에 전한다. 또 신라 화랑 죽지(竹旨)의 죽만랑(竹曼郞) 무리인 득오(得烏)가 당전(幢典)의 직책을 가진 익선(益宣)에게 불려가 부역을 하게 되자, 죽지는 조(租) 30석과 기마용구를 익선에게 주고 득오의 휴가를 허락받았다는 기록이 역시 〈삼국사기〉에 전한다.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권력형 비리인물은 인종 때 중서령(종1품)을 지낸 이자겸이다. 그는 관직을 매매하고 국공(國公)을 사칭하면서 엄청난 부를 축재하였다. 뇌물로 받은 수만근의 고기가 창고에서 썩는 냄새가 시가지를 진동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부정부패는 끊이지 않았다. 특히 세도정치가 극에 달했던 후기에는 3정(三政)이 문란하여 관직을 팔고 사는 것이 예사롭게 이루어지고 탐관오리가 날뛰어 민란의 원인이 되었다.
고대사회의 부정축재는 뇌물수수, 관물(官物)의 절취, 권세를 이용한 침탈 행위 등 세 가지 유형으로 나타났다.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에서는 법령으로 뇌물을 받은 사람을 엄하게 다스렸다.
청백리제도가 시행되고 암행어사가 수시로 지방관청을 살핀 조선 전기에는 비교적 부정부패가 성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