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컴퓨터 통신은 우편, 전화뿐아니라 대면적인 만남을 전제하는 집단 회의도 대신하면서, 구어를 통한 대화를 컴퓨터 글쓰기로 대체한다. 전화 대화에서 개인의 흔적이 음성의 색깔과 억양에 보존되며 개인의 정체성이 화자의 심적 상태를 통해 드러나는 반면에, 컴퓨터 통신의 메시지 서비스에서는 그런 정체성 자체가 허구화되면서 완전한 익명성이 보존된다. 여기서는 상대방의 육체, 목소리, 성별, 개인적 특징들에 주목하지 않으며, 저마다 글쓰는 과정 중에 자기 자신을 등장인물로 만들어 내는 픽션작가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 컴퓨터 통신망에서의 글쓰기는 사회적 의사소통의 맥락으로부터 분리되어 주체의 정체성은 상상적인 것이 된다. 컴퓨터 글의 주체는 스스로를 하나의 타자로 직접 제시하는 것이다.
컴퓨터 회의나 토론에서는 보통 대면적인 회의에서 말의 내용 보다 중시되던 몸짓 언어, 얼굴 표정, 입고 있는 옷, 태도, 제도적인 지위, 개인의 카리스마, 수사학적 기술, 성별, 인종 등등에 의존하지 않는다. 따라서 저자 없음이라는 익명성, 말이 아닌 글이기 때문에 더욱 자기 성찰적이 된다는 점에서 대화에 관한 대화가 되기 쉬움, 참여의 대등성과 열린 비판의 가능성 등을 지니게 된다. 컴퓨터 게시판은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대중적인 토론장이 되고, 정부가 통제하는 뉴스도 국외로부터 유입할 수 있다. 이것은 주체에게 고정된 정체성이나 기존관계의 틀을 부여하지 않음으로해서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1. 컴퓨터 글쓰기와 하이퍼텍스트
오늘날 우리는 컴퓨터와 상호작용하여 세계를 탐색한다. 컴퓨터를 가능케한 현대 기호논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처럼 직접 진술이나 주장들 간의 관계에 주목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