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언어가 사물보다 먼저 존재하지 않았는데도 이처럼 언어가 사물의 존재와 존재 인식에 본질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이유는 무었일까. 그것은 우리가 언어로 질서화된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무는 수억 년 전부터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무라는 이름을 얻지 않았다면, 나무라는 언어로 인간에게 인지되고, 인정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나무라는 사물로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의 꽃은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나무 역시 `나무`라는 언어로 명명되지 않는 한 `하나의 덩어리`에 불과할 뿐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나무가 `나무`라는 언어에 의해 비로서 나무로 인식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김춘수의 <꽃>역시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 곧 언어에 의해 비로소`하나의 몸짓`이 아닌 `꽃`이라는 분명한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김춘수의 「꽃」은 `이름을 부르는 행위`를 통해 비로소 인간이 사물을 인식할 수 있음을, 곧 인식 수단으로서의 언어의 역할 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고 말했다. 모든 사물이 언어를 통하지 않고는 존재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집이 없으면 살 수 없듯이 모든 사물도 언어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X선은 오래 전부터 존재했지만 인간에 의해 발견되어 X선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후에야 비로소 X선이라는 대상으로 인식될 수 있었다. 김춘수의 「꽃」은 언어가 단순한 도구가 아닌 인식의 근본적인 조건이라는 철학적 성찰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 http://www.kcaf.or.kr/basic/literature/ch01/ch01-e.html
▷ http://my.dreamwiz.com/itrue/nonsul/nonsuljaryo/kimchun.htm
▶ 참고할만한 서적
▷ M.하이데거 著 / 소광희 역, 시와 철학, 박영문고 (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