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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용의 이름으로
한국영화 감독들이 대개 그렇지만 김수용은 종잡을 수 없는 감독이다. 그가 `튀는` 감독이기 때문이 아니라 무척 많은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58년 <공처가>로 데뷔한 김수용은 2000년에 개봉한 <침향>에 이르기까지 본인의 말에 따르면 `한국신기록을 두고 다툴만한` 110편의 영화를 찍었다. 그 중에는 수작도 있고 태작도 있다. 그 수많은 작품 목록은 김수용이 동시대에 활동했던 유현목과 김기영처럼 작가의 서명을 남길 의지가 없었다는 걸 알려준다. 그는 영화사의 의뢰를 받은 작품을 꾸준히 찍었으며 신상옥처럼 자기만의 상표를 만들어내는 데도 관심이 없었다. 한 해 6, 7편의 영화를 예사로 찍었고 심지어 67년 한 해 동안 10편의 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던 그는 전형적인 다작의 장인이다. 그런데도 그는 또한 한국영화계의 다른 숱한 다작형 장인과 다른, `김수용적인 것`의 서명을 한국영화에 남겼다.
고유명사 김수용을 거쳐 관통한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영화의 경향과 스타일은 당대의 것이면서 동시에 김수용의 것이기도 하다. `김수용적인 것`은 문예영화, 모더니즘 영화, 목적영화 등 당대 한국영화의 일반적인 범주에 묶이면서도 그 틀 안에서 김수용 개인의 서명이 찍힌 흔적을 새기는 것이다. 그 흔적은 김수용 개인의 궤적이면서 한국영화의 어떤 경향의 궤적을 동시에 그린다. 그는 스스로 한국 영화역사에서 두 손가락에 꼽으면 서러울 영화 테크니션이자 문학 교양인이자 실험적인 성향의 영화감독이라고 여기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방대한 연출작 목록에 대해서는 `작품을 선택해서 자기 색깔을 만드는 걸 난 못했다`고 자인했다. 그는 60년대의 보따리 장수가 주도하던, 지방 배급업자가 주 투자자였던 충무로 영화계에서 다작하며 생존과 명예를 동시에 도모했으며 유신 시대의 70년대에도 `한국 영화 세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