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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문학과의 고리를 완전히 차단하고 국문학을 오직 국문학 내부에서 접근하는 내재적 발전론은 그 크나큰 공헌에도 불구하고, 네그리튀드 또는 일국 사회주의처럼 문제적이다. 가령 조선 시대의 탈춤에 관해서 조동일 교수는, 외래적 요소 및 상층 연회의 침강적 요소에서 접근하는 기존의 학설을 비판하고 민중의 풍농굿에서 그 기원을 찾음으로써 탈춤 연구의 한 획을 그었지만,11) 이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 것 같다. 이 점에서 탈춤 연구자들이 흔히 간과하는 최정여(崔正如) 교수의 견해는 흥미롭다. 그는 불교와 함께 전래된 불교 포교극 기악(伎樂)이 삼국 시대를 거쳐 고려 시대까지 성행하다가 조선 왕조의 사사(寺社) 혁파 정책으로 기악을 연희하던 하품(下品) 승려들이 절에서 쫓겨나 민간 예인들과 만나면서, 다시 말하면 기악의 속화에서 탈춤의 기원을 찾았던 것이다.12)
우선 이 학설의 유효성은 우리 탈춤에 무수히 등장하는 승려들---고승에서 먹중·옴중에 이르는 하품승들---을 비롯한 불교적 요소들을 제대로 해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의 연구 보교에 의하면 양반 과장은 아주 후대에 첨가된 것이라니, 기악과 탈춤의 관계가 예사롭지 않다. 또한 풍농굿과 탈춤 사이에 기악의 존재를 삽입할 때 우리나라 연희사의 역사적 맥락이 바루어진다. 셰익스피어의 근대 비극도 평지돌출이 아니라 중세의 신비극mystery plays과,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 중세 후기의 도덕극morality plays을 모태로 하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도 백제에서 7세기에 전래된 기악(일본에서는 `기가쿠`로 부름)이 사원을 중심으로 번성하다가 아시카가(足利) 막부 시대(1338~1573)에 섬세한 귀족 비극 노오(能)로 발전했음을 감안할 때, 양(洋)의 동서를 막론하고 중세의 종교극이 그 이후 연극사의 전개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