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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는 유교적 관료국가로서 충효가 크게 강조되었고 이의 여행을 위하여 의(義)와 예(禮)가 중시되었다. 지배계층인 士大夫들은 유교의 경서를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 지상과제였으므로 육체적인 활동을 경시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속에서 체육은 위축을 면할 길이 없었으나 국방적 필요에서의 무술 단련을 통한 무사교육은 고려시대와 같이 유지되었다. 조선시대의 무예는 개인무예로서 수박이 계승되었고 격구는 무과시험과목으로 지정될 정도로 권장하였으며 수렵 역시 단체적인 무술습득의 일환으로 활용되었다.
조선시대는 신분제 사회였기 때문에 초기에는 圍基나 六등 귀족성을 지니는 일부 오락에 대해서는 서민계층이 할 수 없도록 통제하였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배계층이 즐기는 오락은 投壺, 六, 圍基, 擊毬 등과 擊棒이었다. 특히 技壺는 士大夫들에게 치심(治心) 을 위한 수단의 하나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시합규칙이 잘 정비되었었다. 한편 서민계층의 유희와 오락은 조선조 초기부터 그 종류가 확대되고 훨씬 다양해졌다. 그 내용을 보면 개인적 성격의 씨름, 手搏, 六, 바둑, 격구, 圍基, 줄타기, 雪馬(스키)등과 단체적 성격의 石戰, 줄다리기, 농악 등이 해하여졌고 남자아이들은 竹馬, 줄넘기, 팽이치기, 연날리기, 자치기를 즐겼다. 또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한 널뛰기, 그네뛰기, 강강수월래와 특수층의 매날리기도 행하여졌다.
더우기 후기에 와서는 신분사회가 붕괴됨에 따라 사대부 중심의 오락도 일반 대중에게 확산되기 시작하였고 반대로 서민계층에서 행하여졌던 오락이나 유희도 사대부의 자제들에게 보급되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