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우리가 `진보`라는 화두를 꺼내었을 때, 분명 그 의미는 역사적 상황과 주체에 의해 한정될 것이다. 그러나 변하지않는 것은 그 지향점이다. 상황은 변하여도 지향점은 변하지않는다. 그러므로 `진보`는 시공간적 제한을 사이에 두지않는다. 우리사회 속의 진보를 향한 운동들, 진보정당은 그 운동들의 결집체이다. 진보정당 창당을 위한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는 지금, 얼핏 진보정당 운동의 역사는 단절된 역사, 절연의 역사로 인식될 수도 있다. 그 원인이 외부에 존재하건 내부에 존재하건, 진보정당운동은 지속성을 지니지 못한 채 흘러갔다. 50년대 진보당을 우리나라 진보정당운동의 시발이라고는 하지만 그 이후 있었던 30년간의 암흑기로 시대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였고 비로소 87년부터 시작된 민중후보운동을 보통 진보정당운동의 시작으로 여긴다. `민중후보 백기완`에서부터 작년 대선에서의 `국민후보`와 그에 반기를 든 물밑 움직임까지 10여년간의 진보정당운동은 얼마있지않으면 가시화되어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보수정치의 문턱을 넘어 `우리의 정치`를 실현하려는 움직임이 진보정당운동의 역사를 잇고 있는 것이다.
1. 해방이후 1987년 이전까지
식민지 상황하의 `민족민중의 완전해방`으로 투쟁을 전개해나가던 진보운동세력들은 45년 반쪽의 해방과 50년 전쟁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났다. 그 시절의 일차적이고 절대적 목표는 `생존`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암흑기였다. 전쟁은 좌우이념 모두를 말살시켰고 이후 독재정권에 의한 반공이데올로기는 진보정당의 입지자체를 허용치않았다. 56년, 3대 정부통령 선거에서 당수 조봉암을 대통령후보로 출마시켰던 진보당은 복잡한 인적구성, 인물 중심의 상층 정치활동이라는 한계점을 지녔지만, `반공`이 국시였던 상황에서 `진보`라는 기치로 평화통일론을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