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시대상황
르네상스의 마지막 시성이요 또 Elizabeth의 마지막 인물로서 Milton에게 미친 시대적인 배경을 여기서 다시 한번 살피는 것은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 같다. 종교와 정치의 큰 대결은 나라의 운명은 물론 그의 생애의 진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갈등의 기원은 복잡하다. 더욱더 자의식이 강한 의회의 요구에 대응하는 면에서 JamesⅠ와 그 아들 Charles Ⅰ는 Elizabeth여왕의 수완과 신축성이 없었다. 또 경제적인 개인주의와 청교도 윤리 및 상업계층의 꾸준한 대두를 보지 못했다. 여기서 불가피한 역사의 과정으로서 귀족적이요, 세습적인 Stuarts왕가의 군주관에 약간의 수정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의회에 대한 Charles의 정책 부족, 신앙의 통일과 예배의 표준화 고집, England와 Scotland대다수 신하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데서 내란이 일어나고 1649년에 재판으로 종말을 보게 된다. 그리고 전례 없는 공화정치의 실험을 겪는다.
내란 중에는 문인 예술가는 대체로 왕당파였다. 이 파가 인생의 품위를 나타내고 아직도 예술가나 문인이 상징하는데 왕의 비호가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많은 작가들은 개인적인 충성과 관심 그리고 다른 편의 도덕적 정신적인 원리 사이에서 분열이 생겨 어느 편인지 주저하는 상태였다. 의회 지지의 핵심은 London의 중산층과 더불어 대체로 남동부 시골에서 오고 반면 Church of England와 대부분의 귀족 및 상류층과 서북부 농민, Midlands등은 왕을 지지했다. 또 의회지지파에 고매한 청교귀족이 있고 시골 청교 구역에도 왕에 충성하는 자금이 있는 등 예외는 있었다. 반왕당파는 모두 동질은 아니다. 정치, 종교, 경제적 동기가 사람과 비율을 달리하기에 좌익에는 급진파 유토피아적 예언자, 종교적 이상주의자 등 가지가지 열정가들이 있었다.
참고문헌
17C 영시의 이해, 강엽, 부산대학교 출판부, 1996
밀튼의 서사시연구, 유영, 연세대학교 출판부, 1980
영국문학사 논강, 유영, 한신문화사, 1987
영시개론, 이재호, 탐구당,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