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리가 반드시 기를 타야만 한다는 것은 리가 어떤 형태로든 기에 의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 점을 강조하면 할수록 주자학 이론 체계 안에서 리가 차지하고 있는 절대적 지위는 그만큼 손상될 수밖에 없다. 이이가 리의 소이연所以然이나 주재성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동시에 그는 이황의 리기호발설理氣互發說에 맞서서 그의 이론을 전개했기 때문에 그의 이론에서 리의 무위성이 강조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비록 이이의 의도는 본래 그렇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리가 서경덕의 경우처럼 단순히 법칙이나 조리의 차원으로 전락될 우려가 없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퇴계 학파에서 끝내 이이의 이론을 용인할 수 없었던 이유이다.
이이의 이론이 안고 있는 이러한 약점을 간파했던 김창협은 주자학의 기본 원칙 중의 하나인 리의 무위성을 부정하지 않는 범위에서 리의 지위를 강화하고자 이황의 이론을 부분적으로 수용하였다. 그의 이러한 경향은 사단과 칠정을 각각 주리와 주기로 이해하는 데서 확인된다. 그는 “사단은 리의 발이고 칠정은 기의 발이다”를 “사단은 리를 위주(主理)로 하여 말한 것이나 기가 그 가운데 있고 칠정은 기를 위주(主氣)로 하여 말한 것이나 리가 그 가운데에 있다”로 해석한다. 물론 그의 이러한 해석은 오직 실천적 요청에 의해서만이 그 정당성이 확보된다. 사단은 확충하라는 뜻으로 말한 것이고 칠정은 경계하라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라는 그의 논거는 사실에 대한 기술이 아니라 사단과 칠정이라는 언어에 대한 기술, 즉 메타 언어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발출 근원이나 발출 경로라는 실제적인 차원을 바탕으로 사단과 칠정을 각기 주리와 주기로 이해한 이황과 구분되는 점이다.